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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호
건강칼럼
‘전공의 사직, 의과대학생 휴학에 따른 현 사태’에 전문의 3인의 관점
2024-05-25

이번 칼럼은 현재 ‘전공의 사직, 의과대학생 휴학에 따른 현 사태’에 대하여 우리 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 전문의 3인이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본다.


건강칼럼① 사회심리적 관점

진짜 공부는 지금부터다

정신건강의학교실 안준호 (울산대학교병원)교수


이젠 내가 나서서 공부하고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

올해 개학을 기다리던 의대생들은 날벼락 같은 뉴스를 들었다. 


의대 정원을 갑자기 2천 명 증원한단다. 정부는 이런 증원 규모에 대해서 전문가들과 논의한 적도 없는데, 대통령까지 나서서 이것이 양보할 수 없는 최소 숫자라고 못박는 게 아닌가. 원래 3천 명 해야 되는데 2천 명으로 깎아줬다고 흥정하듯 말한다.

의대생은 예상치 못하던 증원 규모에 충격을 받았다. 캠퍼스를 밟아보지도 못한 의예과 신입생은 말할 것도 없다. 


정부는 증원 목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의사 수입을 줄여서 앞으로 국민이 의사를 값싸고 쉽게 이용할 수 있게 하려는 정부의 배려다.

학생들은 자신의 직업과 향후 의료 체계가 어떻게 변할지 금방 알아차렸다. 그리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수업을 거부해야 하나. 휴학해야 하나. 평소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고 철석같이 믿었기에 차마 교실을 떠날 엄두가 안 난다.

학생들은 평생 처음 힘든 결정에 내몰렸다. 그동안 책상 위에서 정답을 빨리 찾는 훈련만 해왔는데, 지금은 통하지 않는다. 


학교 시험은 일종의 가상 현실에서 미리 정해진 답 찾기지만, 살면서 닥치는 문제에 정답은 없다. 

고려할 변수가 많고 상황이 유동적이어서 단순한 정답이 없지만, 자신의 학업과 미래가 걸린 중대한 문제이니 어쨌든 선택해야 한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누구 말을 들어볼까?

엉덩이 무겁게 버티면서 의학지식과 치료 기술만 습득하던 시절은 지났다. 

바닥이 흔들리니 책상에서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본다. 창문으로 비바람이 들이치고 건물은 금이 가는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하던 공부나 계속하라고 한다. 


균열은 땜질하고 담장을 높이 쌓으면서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정치인과 관료들 덕분에 국가는 안전하고, 민주주의는 지켜지고, 의료 체계는 합리적으로 개선될 테니, 학생은 공부하고 의사는 진료만 하라고 한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학생과 전공의들이 밖으로 나와 보니 건물은 이미 기울고 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누구 말을 들어볼까?

친구, 교수, 학장, 총장, 장관, 대통령…


친구들과 고민을 나누면 위안은 되지만 세상 경험이 부족한 건 마찬가지다.

지도 교수와 면담하니 조언을 꺼리는 분위기다. 휴학을 위한 면담도 형식적이고 기껏 서류를 갖추어 제출해도 교육부의 지시라며 휴학을 보류한다.

어느 학장은 학생과 전공의에게 들어오라고 호소하고, 다른 학장은 증원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정부에 강력 항의하는데, 총장들은 정원을 몇 배로 늘려도 교육에 지장이 없다고 큰소리친다.


이런 혼란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이미 눈치챘을 것 같다. 우리나라 대학은 오래전에 자율성을 잃었고 학문과 양심의 자유를 상실했다. 

등록금이 10년 이상 동결되고 학생 수가 급감하면서 대학은 생존을 위협받고 교육부 지원금에 의지해 연명하고 있다. 


대형 병원 역시 저수가에 시달리면서 복지부의 규제와 평가에 얽매여 있다. 그러니 대학과 병원의 수장들이 정부를 의식하느라 학생의 미래를 최우선에 두고 솔직하게 조언하기 어렵다. 

특히 공적인 발언이나 단체 메일 내용은 자율성이 극히 제한된다. 안타깝지만 학생들은 이런 한계를 고려해서 말의 행간을 읽을 수밖에 없다.


정부의 발언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러면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정부의 발언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평소 가벼운 질환을 치료할 때도 의학적 근거를 꼼꼼이 따지는 의사로서는 정부가 중대한 정책 결정을 하면서 아무 근거를 대지 못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근거로 삼았다는 논문들이 2천 명 증원과 무관함이 드러나니 정부는 정책적 결정이라고 둘러대고, 나중에는 의사들에게 과학적인 대안을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복잡한 의료 제도를 따져가며 전문가와 논의해야 할 증원 문제를 단순한 표어 몇 마디로 정리해서 극장, 지하철, 아파트에서 엄청나게 선전한다. 공익 광고가 민주적 의사결정을 대신한 셈이다. 그 와중에 복지부 장관과 차관의 의사 비하 언어 습관이 공개 석상에서 드러나니 황당하고 오싹하다.

고위 관료들의 검토를 거쳤을 대통령의 발언은 나을까?


“1977년 이래 우리나라 GDP는 116배, 국민 의료비는 511배나 증가했지만 이 기간 의사 수는 7배 늘어나는 데 그쳤다.” 올해 3월 대통령의 공개 발언이다.

이 문장이 수능 언어 영역에 나왔다면 의대생들은 한눈에 비문(非文)임을 알아챘을 것이다. 숫자 차이를 강조하려다 비교할 수 없는 대상을 비교하고 있으니. 고위 관료는 이런 글을 올리고 대통령은 그대로 읽다니 모두 무지하다. 

한 문장을 트집 잡는 게 아니라 이런 식의 비문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2천 명 숫자만 지킨다면 자유로운 대화를 하자는 둥.


이젠 내가 나서서 공부하고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

교수들의 사고와 표현은 위축되고, 국정 책임자들은 정책 선전에 급급해서 무지를 드러낸다. 이제 의대생들은 현타가 오기 시작한다. 

책상 밖의 세상이 이렇게 허술하고 위태롭다니. 이런 세상에서 확실히 믿고 따를 대상을 찾기가 그토록 어렵다니.

세상에 나의 삶을 나처럼 아껴주는 사람은 없고, 누구도 나의 판단을 대신할 수 없다. 이젠 내가 나서서 공부하고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 진짜 공부는 이제부터다.


* 참고: 이 글은 2024년 3월 29일에 작성되었습니다. 울산의대 소식지가 발간되는 시점에는 증원 문제가 해결되어 현재 겪는 고난이 소중한 경험으로 남아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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