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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호
건강칼럼
건강칼럼② 정신분석적 관점
2024-05-25

거짓 우울과 우리에게 필요한 애도

“우리는 떳떳하고 견고하다”

정신건강의학교실 안준석 (울산대학교병원)교수


사직서를 쓴 전공의들과 식사 자리가 있던 날, 울산에는 많은 비가 내렸다. 바람도 많이 불어 우산이 전혀 쓸모가 없었기에 비를 그냥 맞았다. 힘내라고 애써 응원하고 와서는, 비에 젖은 제 모습을 보고 자책했다. 

본인도 이 상황이 두려운 3년밖에 되지 않은 풋내기 스승 주제에 의무감을 안고 응원해 주려는 내 자신을 구박했다. 

괜한 서러움도 몰려와서 적잖이 당황했다. 다음날부터 누구를 향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분노와 우울에 동시에 휩싸였다. 

내일부터 점점 더 우리를 미워하기로 할 사람들을 떠올려 보니, 나는 누구를 위해 병원에 있는지 점점 더 혼란스럽고 우울해져 갔다.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난 지금, 나 뿐만 아니라 많은 동료 의사분들께서 우울과 무기력을 이야기한다. 


“우리의 우울이 사실은 우리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사실 지금 우리의 우울이 사실은 우리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프로이트는 일차적 자기애 (primary narcissism)는 스스로를 완벽하게 여기고 전능하게 느끼기 위해 받기만 하는 상태라 했지만, 이것이 좌절되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이차적 자기애 (secondary narcissism)상태로 발달한다 하였다.

따라서 이차적 자기애는 스스로 자기애적 필요를 충분히 해결하면서도 본인도 타인의 필요에 반응을 시작하는 건강한 상태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의료인으로서 스승과 동료들의 도움을 받으며, 이러한 자기애적 좌절을 넘어 전문가로 성장하게 된다. 

지식, 명예, 금전적 성취 등 스스로에게 향하는 일차원적 자기애를 환자의 돌봄이라는 가치로 동시에 승화하게 된다. 

‘바이탈 뽕’이라는 은어가 이를 축약적으로 설명해 준다.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해도, 환자를 살리는 데서 오는 유능감과 직업적, 지적 만족감은 우리의 건강한 자기애를 충족시키는 연료가 되어왔다.


떳떳한 의사가 되기 위한 노력들

지난날 우리는 타인의 건강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양심과 함께, 방대한 지식의 양을 소화하기 위한 도제식 교육과 살인적인 업무량 아래에서 각자의 성장을 채찍질해 왔다. 

학사 과정에서의 수많은 경험들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했고, 수련 과정에서 마주한 수많은 선택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겨우 이 자리에 오게 되었다. 

교수가 되기까지도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왔음에도, 우리는 평생 스스로를 부족해 하며 환자를 위해 겸허히 우리의 지식과 기술을 연마했다. 

그래야만 스스로에게도, 환자에게도, 후배들에게도 떳떳한 의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양심적인 인생을 살았는가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우리는 최선의 결과를 내지 못하면 소송을 당하기 시작했다. 국가는 환자를 살리지 못한 의사의 법정 구속도 서슴지 않는다. 

우리의 노력은 무시한 채 비난만이 남았다. 이제 ‘바이탈 뽕’은 길티플레져 (guilty pleasure)로 변질되어 버린 듯하다. 

공부만 잘해서 세상 물정을 모르는 철부지, 이기적인 학생과 전공의, 그리고 그들의 편을 드는 철없는 교수만이 남아있는 듯하다. 

우리가 일부 도덕적 해이를 자정하지 못한 점, 우리의 헌신이 누군가의 권리가 되는지도 모르고 살아왔다면 그 대가로 이 아픔을 받아들이기는 하겠다.

하지만 우리가 모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할 정도로 비양심적인 인생을 살았는가 되물어 본다면 단언코 “아니오”라고 답할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우울과 무기력의 주인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이 사회는 우리가 전문가로서 자기애적 성장을 위한 성취를 이룰 기회조차 주지 않으면서, 동시에 우리를 돈 밖에 모르는 집단, 고학력 카르텔이라고 비난한다. 

우리는 이러한 사회적 압박과 비난에 직면하여 우울과 무기력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느끼는 우울과 무기력의 주인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목적을 성취하지 못했을 때의 일차적 자기애의 좌절에 따른 우울감과 무력감이 두려워 그것을 투사 (projection)할 뿐이다. 

우리들의 좌절과 우울이 필요한 누군가가 광장에 그것을 전시하기 위해, 의사라는 집단에 의도적으로 거대한 자기애적 생채기를 내고자 하는 의도일 뿐이다. 이것은 거짓 우울이다.


애도 과정에 필요한 우울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것은 슬프고도 상징적인 과거와의 이별의 장면이다. 

우리도 이전에는 누군가의 제자였고, 그들에게 가르침 받으며 직업과 사회적 책무의 가치관을 형성해 왔다. 

환자를 떠난 의사라는 프레임에 가려 그들 전부를 비양심적인 젊은 의사로 매도할 수 있겠지만, 이들의 결정은 스스로의 배움과 가치관 형성을 포기할 만큼 개인의 생존 문제가 달린 문제였던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병원과 스승, 그리고 환자 곁을 떠나갔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우울은 따로 있다. 우리가 애써 믿고 버텨온 시간들과 이별해야 한다는 애도 (grief) 과정에 필요한 우울이다.


“우리를 미워하는 것들로부터 철저히 이별하자”

교수님, 전공의 선생님, 그리고 이 글을 읽는 학생과 학부모 여러분. 애써 우리를 미워하는 것들과 이제 이별해도 괜찮다. 

이번엔 그토록 우리를 미워하는 것들로부터 철저히 이별하자. 

저마다 값진 희생을 해온 소중한 마음들을, 값싼 이기심으로 지워내려는 무리들과 철저히 헤어지자. 그래서 이 이별에 앞으로 어떠한 애도와 우울이 따를지라도, 이 애도의 터널을 지나가자.

만약 그 이별의 과정에 잠시 내려 두어야 할 양심의 고통이 따르더라도 당황하지 않았으면 한다. 

지난날 우리를 신뢰하는 가족, 제자, 환자들로만 버텨온 지나친 양심의 무게로 우리는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제 그 무거운 짐을 내려두자.

그리하여 비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모든 것이 비워내어 지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에 대한 순수한 열망과 우리들을 신뢰하는 환자를 위한 헌신을 이곳에 다시 채워갔으면 좋겠다. 

나아가 교수들은 국가와 사회를 설득하고, 환자를 향한 우리의 열정과 헌신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대중에게 요구할 수 있는 건강한 우리의 자기애를 이곳에 다시 채워 놓도록 하자.

우리는 떳떳하고 견고하다. 이 사회에 필요한 건강한 자기애와 헌신이 준비된 집단이다.

이 혼란과 우울의 끝에서 언젠가 우리는 다시 우뚝 선 꽤 괜찮은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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